2007년 학교보건법이 개정된 후, 2009년 3월 1일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은 보건교사에게 보건교육을 받도록 법률이 개정되었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보건교육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러는 주요 과목을 공부하기도 바쁜데, 무슨 보건교육인가 의문을 던지는 분도 있고, 학교장 승진을 위해 보건 수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황망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선진국에서는 흡연, 성, 음주, 과도한 카페인 및 청량음료 섭취 같은 건강행태가 학업성취에 영향을 끼치며, 초등학교에서 통합적인 보건교육을 실시한 결과 읽기와 수학 등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졌다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보건교육이 학업 증진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란다. 보건교사의 수업 유무와 상관없이 교과교사와 동일한 양성과정을 거치고, 동일한 임용시험을 보는데도 그동안 ‘보건교사’만 아무 이유 없이 학교장 승진을 제한해왔는데, 이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라는 측면에서 보건교사도 교장 승진이 가능하도록 법이 바뀌었다고 설명드리면 그제서야 수긍하시기도 하고.
이런 거창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깨닫는 보건교육의 효과가 있다. 신규 임용된 이래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건교육 의무 법률 유무와 상관없이 보건 수업을 실시해왔는데, 보건교육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며칠 후로 다가온 체육대회를 앞둔 지난 월요일, 3교시 보건 수업 종료 5분전 쯤 되었을까. 보건 수업을 하는 동안 보건실에서 대기하시는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명종(가명)이가 이어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가슴을 바닥에 부딪혔다는 거다. 급하게 내려가 보니, 벽에 몸을 기대고, 팔도 움직이지 않도록 반대쪽 손으로 감싸 안은 채 앉아 있다. 그리고는, 나를 보자마다 대뜸, 쇄골이 부러진 것 같다며 지난 보건 수업 시간에 배운대로 최대한 환부를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했다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들어보니 앞에 달렸던 여학생 주자가 상대편보다 뒤쳐져, 바통을 이어받자마자 최선을 다해 큰 폭으로 내달리다가 뒤에 오던 아이의 다리와 엉켰던 모양이다.
체육선생님께서 괜찮은지 움직여보라고 했더니, 보건 수업시간에 쇄골 골절시 팔이나 어깨를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배웠다며 말씀드렸다나.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대처에 자부심이 들었는지, 통증이 심할 텐데도 띄어띄엄 설명을 이어간다. 119에 연락해 병원으로 직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쇄골이 부러져 당분간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올해 고3이 된 성주(가명)는 뭔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깐 들러서는 주변을 맴돌았다. 딱히 아파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더니, 국어 등 몇몇 과목이 최하위 등급에서 무려 4등급으로 뛰어올랐다고 자랑이다. 작년 보건 수업 태도가 성실하지 못한 것 같아 눈 여겨 보다가, 이후 보건실에서 우연히 상담을 하게 됐다.
알고 보니, 성주가 컴퓨터 게임에 있어서 거의 지존급이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프로게이머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 암기력이 뛰어나서 중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이 직접 특별 개인지도를 할 정도로 주목받았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게임으로 돈도 소소하게 벌 수 있으니 대학에 갈 필요성도 모르겠고, 그래서 게임 말고는 흥미가 없으니 뭐든 하기 싫다는 요지였다. 돈을 벌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게 아니고, 대학에 가면 좋은 교수님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고 그 분들의 지도로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어쩌면 지금 가진 능력을 훨씬 더 폭발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별 기대도 없이 지나가듯 이야기했었는데, 그게 아이에게 자극이 된 모양이다. 아마 보건 수업이 아니었다면, 성주가 보건실에 찾아오지 않는 한 우리 학교에 성주가 재학 중인 사실도 몰랐을 거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 짓하면, 텍사스에서는 태풍이 불 수 있다는데, 보건 수업을 통한 아이들의 미세한 변화가 쌓이다보면, 훗날 전혀 예상 못한 선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