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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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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역할과 그 사명

주필 하재준

기사입력 2020-10-2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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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역할을 생각할 때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주나라 여왕勵王의 이야기가 떠 어른다. 주나라 여왕은 백성의 여론을 무시하고 일벌백계一罰百戒로 혹독한 정치를 했다. 그러자 그렇게도 높았던 백성들의 불평불만의 소리가 강압정책에 못 이겨 잠잠했다. 이를 본 여왕은 기분이 좋아서 그의 신하인 소공召公에게 말했다. “보라, 그렇게도 들끓었던 백성들의 불평불만의 소리가 강압정책을 쓰니 어떠한가. 이렇게 잠잠하지 않는가?”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소공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잠시 입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일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것 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물이 둑을 무너뜨리는 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물이 순조롭게 흐르도록 하듯이 백성들에게 입을 열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그렇다 여론을 존중할 때 그 사회는 바람직하게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요, 그 나라 또한 치국안민이治國安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여론이냐가 문제다. 사람을 위함은 맑은 영혼에 있듯이 여론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여론이어야 한다. 국가를 염려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그런 투명한 여론이어야 한다. 국민의 혼을 오염시키는 그런 여론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너무도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시끄러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눈만 뜨면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 각종 대중매체들이 쏟아내는 의미 없는 말을 듣고 엄격하게 선별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그들을 볼 때마다 그는 과연 어느 나라 본적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나 가짜는 포장을 잘 한다. 그럴싸한 포장에만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는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그 매체들이 사람을 흡수해 버린다. 그때부터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고 남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지 않으려면 쓸데없는 대화를 피해야 하고 건전치 못한 친구를 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건전치 못한 친구란 악의가 있는 친구가 아니라 판단을 잘못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자들은 육신은 살아 있어도 정신은 죽은 자들이 아닌가? 분별없이 지껄이는 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알아야할 뉴스나 기사보다는 시끄럽고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바깥 소리에 정신을 팔리다 보면 내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자칫하면 자신의 판단력도 창의력도 송두리 채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큰일이다. 내가 내 인생을 자주적으로 산다기보다는 무엇인가에 끌려 다니는 삶이다. 그것은 분명히 나의 삶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속에 이런 요소가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오염된 공기는 사람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그뿐인가? 인간의 혼을 파괴시키는 정보의 오염, 언어의 오염은 더 큰 문제다. 공기는 외적인 것이기에 마스크를 착용하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고 일산화탄소를 최대 줄이면 줄인 만큼 맑은 공기는 되돌아온다. 이번 코로나19로 탄소 배출량이 줄었기 때문에 얼마나 공기가 맑아졌는가. 정신적인 오염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날은 복잡한 세상이라서 그런지 제 정신을 놓고 사는 사람이 많다. 자신만 놓고 살아가는 것도 안 될 일인데 남까지 감염시켜 모두 골빈 속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면 더 큰 문제다. 이 모두의 책임은 나와 우리에게 있다. 그러기에 언론의 역할과 사명은 참으로 막중하다. 내 정신은 내가 지키고 우리의 정신은 우리가 이룩할 때 밝은 사회가 이룩되는 것이다.

경인자치신문 (kms08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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