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 새날이 밝아왔다. 우리는 흔히 이날을 맞이하면서 새해 복만이 받으세요. 라고 덕담어린 인사를 주고받는다. 얼마나 흐뭇한 모습이며 풍습인가. 그런데 우리가 깊이 되새겨 보고 싶은 바가 있다.
태양이 밝아오는 새날은 자연의 새날이고 우리가 맞이할 새날은 인간의 새날이다. 그런데 흔히들 1년, 365일이 지나면 저절로 찾아오는 새날을 새해 새날이라고 한다. 물론 의미부여로 주어진 새날이라고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의 새날은 놀고 있어도 자고 있어도 저절로 동이 튼다. 그러나 인간이 맞이할 새날은 오직 싸워 승리해야만 비로소 밝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순수한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랫말인데 어찌 그런 의미가 담겨 있을까 만은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성이 없는 동물의 설날과 우리가 맞이할 설날은 엄연히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순간 한자의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牛生馬死 (우생마사)’다. 이 깊은 뜻을 풀이해 보자.
장마철의 이야기다. 말과 소가 홍수에 떠내려갈 때 말은 해엄을 잘 하는 관계로 물살을 무시하고 뭍으로 가려다가 그만 힘이 지쳐 익사하고 만다. 그러나 우직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 가면서 조금씩 더 가까이 강가로 나왔기에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자기의 지식이나 능력만 믿고 세상을 우습게 여기지 말고 삶의 이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지혜임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
물은 생명이요, 우리의 삶터다. 달나라를 처음으로 정복한 암스트롱은 달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달에 착륙하자마자 제일먼저 확인한 것이 물의 존재여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 물이 흐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강(江)의 유역이었음을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어느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육체는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福)은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은총이다. 찬송가 가사에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겠네.”란 가사가 있다. 이 노랫말처럼 선한 싸움으로 승리자가 되어 다 같이 월계관을 받아쓰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