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리피스평화교육연구소장·부천YMCA 회원)
2018년 영국 런던 남부의 한 중학교. 수업 시간마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던 한 학생이 있었다. 교사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수업 방해 행동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학교에 배치된 MHST(Mental Health Support Teams) 실무자는 아이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아이를 ‘문제 학생’으로 보지 않고, 반복되는 행동 뒤에 있는 신호를 읽기 시작했다. 가정 내 갈등, 불안, 또래관계 단절, 수면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고, 아이는 이미 작은 위기 상태에 진입해 있었다.
MHST 팀은 학교 상담만 진행하지 않았다. 부모와 연결했고, 지역 정신건강 서비스와 협력했으며, 교사들과 함께 아이의 교실 환경을 조정했다. 몇 달 뒤 이 학생은 다시 교실 안에서 수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장기 결석과 고위험군 전환을 막을 수 있었다. 영국 정부가 MHST를 도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완전히 무너진 뒤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부천의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현장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신호들이 존재해 왔다. 교실에 앉아 있지만 점점 관계에서 멀어지는 아이, 스마트폰과 게임 속으로 숨어드는 아이, 학교를 버티지 못하고 결석을 반복하는 아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분노하거나 무기력 속에 가라앉는 아이들 말이다. 문제는 신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를 연결하는 시스템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데 있다.
물론 현재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가 시행되고 있다. 교육청과 학교, Wee센터와 상담기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청소년시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여전히 다르다. 정책은 선언되었지만 실제 위기청소년 문제는 효율성과 효과성, 그리고 현장의 효능감 측면에서 시민들이 체감할 만큼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교사는 여전히 혼자 버티고, 부모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아이는 여러 기관 사이를 떠돌다가 결국 더 큰 위기로 진입하는 경우가 반복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말한다. “그건 시청이나 시의회가 아니라 교육지원청이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러나 바로 그 인식 자체가 지금의 한계를 보여준다. 청소년 위기는 더 이상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폭력, 고립·은둔, 자해와 우울, 디지털 중독, 딥페이크 범죄, 경계선지능과 발달지연 문제는 이미 교육·복지·보건·지역사회가 동시에 연결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학교의 일’, ‘복지의 일’, ‘상담기관의 일’로 나누며 책임의 경계만 따지고 있다.
영국 MHST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청소년 문제는 특정 기관 하나의 업무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공공의 안전망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영국은 학교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NHS(국가보건서비스), 지방정부, 학교, 지역 정신건강 기관이 함께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MHST는 병원 이전 단계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아직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냥 방치하면 분명 더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아이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연결하는 역할이었다.
영국 교육부는 MHST의 효과를 평가하며 ‘학생들의 정서 문제 악화를 예방하고, 학교 출석률과 자기조절 능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교사들이 더 이상 혼자 모든 문제를 떠안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MHST는 단순한 상담사업이 아니라 ‘학교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였던 셈이다.
부천 역시 이제는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부천형 MHST’, 즉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이는 청소년 마음건강 통합지원체계이다. 교실 안에서는 교사와 생활교육이 아이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학교 밖에서는 지역의 정서 코디네이터가 학생·부모·기관을 연결하며, 위기 상황에서는 전문기관과 신속하게 연계되고, 이후에는 치유 서클과 또래 관계망을 통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구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상담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도시의 안전 정책이자, 교육 정책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전략이다. 지금처럼 위기가 심각해진 이후에야 개입하는 방식으로는 앞으로의 청소년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다. 초저출생 시대의 도시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아동·청소년이 무너지는 도시에는 미래도 없다.
부천은 이미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도시다. 청소년기관, 복지 인프라, 시민사회, 학교 현장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자원들을 하나의 회복 생태계로 연결하는 일이다. 이것은 교육청만으로는 할 수 없다. 지방정부와 시의회,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2026년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청소년 문제를 여전히 ‘학교 안의 문제’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도시 전체의 미래 전략으로 바라볼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반복 발표하는 행정이 아니라, 아이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연결할 수 있는 도시의 용기이다. 후보자 당신이 표방한다는 공약에는 미래가 담겨 있는가?